눅 16:19-31 (4/11/2024)
“한 부자”? 그는 누구일까?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은 사람? 그 당시 귀족이나 제사장이 입었던 겉옷과 속옷이라 하는데...그가 날마다 호화롭게 즐긴 것을 보니 사회적으로도 높은 지위에 앉아 물질도 차고 넘쳐 띵까당, 띵까당..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바리새인은 아닌가? 부자는 No Name, 그런데 왜 거지의 이름은 밝히나? 그 거지 나사로가 세상이 부러워하는 그 부자 집 앞에 “버려진 채” 누워있다는 것 아닌가? “버려진 채”라니? 하나님이 창조하신 한 영혼인데..헌데투성이? 몸에 피부병이 창궐하여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있었던가? 그런데 거지가 죽고 부자도 죽었다. 거지는 천사들이 마중을 나온 것인가? 거지가 죽어서 하늘의 황태자로 신분상승이 되었나? 부자는 음부로 그리고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부자는 왜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하나? 육적 아브라함의 혈통이라서? 부자가 음부에서 물 한 방울만 입에 묻혀 달라 통사정을 한다. 부자로 살던 때와는 너무도 판이한 모습 아닌가? 살아 있었을 때 너는 떵떵거리고 살았으니 괴로움을 받고 거지로 살던 나사로는 지금 고난 대신 위로를 받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딱 부러지게 말한다. 그리고 부자와 나사로 사이에 건너지 못할 구렁텅이가 있으니 어쩌겠는가? 주객전도 아닌가? 생명이 있을 때 하나님 법에 따라 살았어야 했건만.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끈질기게 부탁한다. 부자에게 형제 다섯이 있는데 나사로를 보내서 죽음 후의 상태를 증언해 달라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려 주라는 것인가? 부자로 살던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막심인가? 아브라함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서 듣게 하라한다. 역시 믿음의 조상이다. 율법에 다 적혀 있으니 말씀을 따르면 된다는 뜻 아닌가? 부자는 여전히 실갱이를 한다. 나사로를 보내 천국과 지옥이 진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면 자기 형제들이 회개할 것이라는 것이다. 회개를 아는 걸 보니 부자도 영적으로 전혀 꽝은 아니었나 보네. 그러나 Timing을 놓쳤으니 어찌할꼬! 죽은 나사로가 찾아 간다 해도 말씀을 듣는 귀가 닫혔으면 결코 영적 권면을 무시할 것이라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종지부를 찍는다.
성령 하나님,
부자와 나사로의 삶이 극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의 청중에는 바리새인
들도 앉아 있었지요? 그렇다면 한 부자
는 바리새인일 수도 있지요? “돈을
좋아하는 자들“로 낙인이 찍힐 만큼
호의호식하던 그들 아닌가요? “한
부자”는 문 앞에 쓰러져 있는 거지는
안중에도 없었지요? 거지 나사로가
이웃이었건만 부자라는 특권의식과
교만에 빠져 소외된 자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자기만 충족시키고
있었지요?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잊고 청지기적 사명을 외면한
채 재물에 빠져 율법에는 묶였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버려버린
영적 고아가 되었지요? “한 부자”
가 바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의
주인공이지요? 나는 누가 될까요?
“한 부자” 아니면 거지 나사로? 나는
부자 되는 것도 별로이고 더욱이 거지
는 아니지요. 다만 내가 하나님 아버지
의 약속을 붙잡고 살게 하셔서 영적
부요함을 누리는 축복이 내 것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