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6:10-27 (9/16/2024)
모세와 아론이 “내 백성을 보내라”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다가 이스라엘 자손이 바로에게 바가지(?)를 썼는데 또 이스라엘 자손들을 보내라 바로에게 말하라 하시니 모세는 황당한 나머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스라엘 자손들도 말을 듣지 않는데 바로가 듣겠느냐며 자신은 입이 둔해 더 이상 설득할 수 없다 하나님께 통사정(?)이다. “Nevertheless” 모세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신 것은 아니실텐데 하나님은 또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오도록 바로에게 명하라 하신다. 하시겠다면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확연히 보여 주시는 것인가? 그런데 왜 이스라엘의 족보가 등장하나? 르우벤, 시므온, 레위. 그리고 더 내려가 므라리의 아들들이 레위의 족장. 그리고 아므람, 모세와 아론의 아버지가 나온다. 어머니 요게벳의 이름까지. 이스라엘 족보에 왜 여자 이름이 등장? 아론의 아내 엘리세바,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아들이 비느하스(민25:7-8)? 족보를 통해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모세와 아론의 계보를 통해 실행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는 것인가? 그런데 왜 “이스라엘 자손들을 그들의 군대대로”라 하시나? 노예 이스라엘 자손을 군대로 급상승하게 하신다는 것인가?
아브라함과 맺은 횃불 언약(창15:13-18)을 실행하시는 하나님과 모세의 망설임이 마찰을 일으킨다. 왜 모세는 쫄은걸까? 하나님에 대한 모세의 불신앙 때문인가? 또는 모세 안에 숨어있는 열등감의 자아 발현인가?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일까? 족보로는 레위의 후손인 모세 그러나 내적으로는 하나님 안에서의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증거일까? 모세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했을 때 “사람의 입을 누가 지었느냐 ..여호와가 아니냐”(출4:11)하셨건만 또 반복해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출6:30)하다니..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귓전으로 흘렸다는 것인가? 아니면 자아로 꽉찬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틈새가 없었다는 것인가? 나는 어떤가?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의 피로 살아난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출애굽의 대단원을 펼치시려 모세를 빚어 가시는 하나님 그리고 자기 속으로 움츠러드는 모세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일으켜 하나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키워 주시려는 하나님을 만난다. 나는 육신적으로는 레위 족속은 아니지만 나도 모세의 계보에 끼어 있지 않은가? 나는 누구인가? 나를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십자가를 나를 대신해 감당하시고 마침내 내게 묻어 있는 죄성을 예수의 피로 덮어 나를 하늘에 속한 자로 만들어 가고 계시니 예수가 나의 족보의 영적 연결고리가 되시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무너진 모세의 정체성을 반면교사 삼아 나의 삶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영적으로 나는 예수 계보라는 자존감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