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3:1-10 (9/7/2024)
왜 모세의 장인 르우엘이라 안하고 “이드로”라 하나? 이제 모세는 장인의 양떼 지킴이인가? 어느 광야인가? 왜 서쪽으로 갔을까? 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른 것인가? 모세가 그 산을 알았을까? 그런데, 그런데..여호와의 사자? 천사가 떨기나무 불꽃 안에서 나오다니? 떨기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왜 불꽃 안에서 나오나? 불꽃이 무엇을 상징하나? 떨기나무에 불이 붙으면 타 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나무가 그대로 서 있다는 것이 아닌가? 호렙산에 도착한 모세는 그 벌어진 일에 놀라지 않았을까?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타지 않은 떨기나무를 보려고 가까이 나무에 간다. 모세가 경악해 하는 그때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신다. 왜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시나? 모세야 모세야. 모세의 이름을 아시는 하나님. 모세는 사시나무 떨 듯 심히 떨리지 않았을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다니. 경직되었을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한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지 말라” 하시나? 거룩하신 하나님께 근접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을 드러내시나? 왜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라 하시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앞 이기에?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시나? 무엇을 은유하시는 것인가? 왜 하나님이 모세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 밝히시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어떤 관계인지 깨우쳐 주고 싶으셨던 것일까? 모세는 엄마가 자기에게 젖 먹이던 그때 들려주었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을 기억했을까? 모세는 그 여호와 앞이라는 사실에 심히 두려워했던가? 이것이 모세의 여호와 경외함이던가? 드디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이유를 설명하신다 할까? 첫째 여호와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로 고통당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의 아픈 가슴을 안다 하신다. 그런데 왜 “내가 내려가서”라 하시나? 어찌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 가겠다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을 예시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계획을 다 털어 놓으신 후 왜 모세에게 “이제 가라”하시나? 어디로 가라하시는 것인가? 애굽왕 바로에게?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 다 들었고 학대당하는 것도 다 보셨다며 모세에게 사명을 주시는 것인가? 구원 사역을 모세에게 맡기시겠다는 것인가? 왜 “내가” 보내고,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시나? 모세에게 주신 사명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실행하실 것이니 모세는 따르기만 하라 안심(?) 시키시는 것인가?
처가살이를 하고 있던 모세. 장인의 양떼를 몰고 이리저리. 광야 생활도 어느덧 40년. 이제 나이가 80 아닌가?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호렙에 가까이 오는 모세를 만나기로 작정하신 것인가? 모세는 불붙은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 것이 신기해 가까이 보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가까이 오지 마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 이기에 신발을 벗으라 하시나?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시며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잊지 않았다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내려가서” 하나님이 주체가 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건지시겠다 하신다. 일은 하나님이 하시되 모세는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가면 된다 하시는 것인가? 나는 큐티 세미나 테이블 세팅을 맡고는 짧은 시간에 어찌할까 고민하며 속으로 기도한다. 그런데 모든 아이디어와 자료들이 생각지도 않게 풀리면서 내가 하나님께 집중할 때 일하시는 하나님을 나는 만난다. 큐티 세미나는 프로그램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그러므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를 위한 도구이다. 성령 하나님은 내게 QSA 소문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주셨다 할까? 그래서 QSA BZ Card를 만들어 나누게 하시려는 것인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4:6)에서 벗어나 말씀 묵상의 현장에 나와 우리 사랑 공동체가 함께 하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