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2:1-14 (10/2/2024)
왜 “애굽 땅에서”? 아직 출애굽 전인 것이다. “이달”은 언제? 왜 해의 첫달, 1월로 이달을 바꾸라 하시나? 왜 첫 달 열흘에 어린양을 준비하라 하시나? 왜 한 가족이 한 마리씩 먹을 어린양을 준비하라시는 것인가? 한 가족에게 한 마리가 많으면 이웃과 함께 어린양을 나누어 먹으라 하신다. 흠이 없는 어린양?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벧전 1:19)를 예표하시는 것인가? 왜 일년 된 수컷이라 하시나? 왜 일월 십사일까지 어린양을 데리고 있으라 하시나? 왜 어스름해질 때 잡으라 하시나? 왜 피를 좌우 문설주와 문 양옆에 바르라 하시나? 왜 불에 구워서 무교병과 쓴 나물과 같이 먹으라 하시나? 왜 삶아 먹지 말고 불에 구워 먹으라 하시나? 왜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 하시나? 하나님께서 왜 양을 먹을 때 허리에 띠, 신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하시나? 애굽 탈출을 준비하라시는 것인가? 왜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라 하시나? 그리고 왜 “내가”라 하시며 하나님께서 애굽 온 땅을 다니시며 짐승이니 사람이니 처음 난 것들을 죽일 것이고 애굽의 신들도 끝장을 보게 하신다 하나? “나는 여호와이다” 즉 오직 한 분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과 엄위하심을 알게 될 것이라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은 그냥 지나갈 것이며 어떤 재앙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미치지 않을 것이라 단서를 붙이신다.
열 번째 재앙을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구속의 분기점을 제공하신다. 400년이란 애굽에서의 긴 노예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 하나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위한 새로운 출발을 선물하시는 것 아닌가? 왜 “이달”을 해의 첫 달로 바꾸라 하시나? 모세에게 유월절 어린양 사건을 지시하시면서 유월절을 기념하게 하시려고?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출애굽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어린양 예수를 알았겠는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이라 지명하신 인생들을 위해 창세 때 예표하신 말씀 (창3:15)을 시행하시려고 어린 양을 출현시키고 계신 것이 아닌가? 나는 말하자면 육적으로는 이방 민족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나의 족보는 이스라엘이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갈3:7) 나는 말씀에서 “어린 양”을 만나면 그리스도의 피로 나의 족보를 바꾸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보자기가 나를 덮는 것 같아 숨을 몰아쉰다. 은혜로다! 은혜로다! 그러나 내가 어찌 이 놀라운 FACT에 내 영혼이 스스로 잠식할 수 있었겠는가? 내 마음이 어찌 스스로 구원의 감격으로 함성을 지를 수 있으리요? 내 열심? 내 지식? NO WAY! 내가 어찌 성경을 이해할 수 있으며 어찌 광대하신 하나님의 경륜의 근처에라도 접근할 수 있으리요? 성령 하나님이 나를 말씀으로 이끄시고 나의 영을 조금씩이라도 열어주시는 덕분이 아닌가? 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받고 싶어 감히 성령 충만을 소원하지만 어찌 그리될까 흔들리기도 한다. 물론 “너희가 기도 할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21:22)하셨기에 구하면 주실 것을 믿는다. 나는 또한 성경에 적어 놓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하나님께서 시행하시는 것을 출애굽을 통해 확연하게 포착하지 않았는가?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지속적으로 붙잡고 기도하고 있는가? 성경 속의 모든 약속이 실은 내 것 아닌가?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도 실현될 것을 기대하며 현실에 기죽지 말고 약속의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나는 내가 적어 놓은 90여개의 약속의 말씀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에 올려놓기로 새삼 결심한다. 성령 하나님 결단하였으니 도와주소서!
아멘! 약속의 말씀을 꼭 붙들고 놓치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