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2:5-11 (8/6/2024)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라? 무엇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라 할까? 그 마음을 어떻게 품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께서 어찌 하나님과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나? 왜 ”오히려“ 종의 태도를 취하셨나? 어찌 사람으로 태어나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나? 그 결과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수를 대우 하셨나?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아하! 모든 무릎이 ”예수 이름“앞에 끓게 하시고 예수를 주로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고..할렐루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17:2)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친히 창조하신 인생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았기에 순종하실 수 있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예수의 가슴에 박힌 아버지가 주신 소명이 불타올라 겸손히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바울은 내게 예수를 생각하라 한다. 나는 얼마나 예수를 생각할까? 나는 예수를 깊이 알고 있는가? 나는 예수와의 친교를 깊이 사모하고 있는가? 나를 살리신 예수, 내가 닮아야 할 예수를 나의 추종자로 삼고 있는가? 나는 세상사를 뛰어 넘어 예수께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신랑 예수와 정혼한 신부 아닌가? 신랑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서 처소를 예비하는 동안 신부된 나는 결혼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준비는 예수 닮기가 아닌가? 신랑 예수가 거할 집을 마련하는 동안 아버지 하나님께서 신부를 데리러 가라 하는 날은 분명 닥아올테고.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그래서 나는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 예수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신부 아닌가? 내가 준비할 것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아닌가? Home Depot의 스페니쉬 친구들이 여기 저기 서 있다. 전도용으로 친구에게 받은 모자가 가득 들어 있는 박스를 열고 손짖을 하니 이들이 하나 둘 모인다. 나는 모자를 Free로 가져가라며 전도지를 건네주고는 찬찬히 읽는 것이 숙제라 말한다. 모자를 하나씩 받은 그들이 여느때와는 달리 전도지를 심각하게 읽는 모습이 눈에 띄고 나의 작은 사랑이 하는 일을 목격하고는 이들과 사랑의 언어가 통한 것 같아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