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1:12-18 (8/2/2024)
“당한 일”이 무엇인가? 로마 감옥에 갇힌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 매임이 오히려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었다 하는가? 왕을 경호하는 군사들이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던가? 바울의 투옥이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나? “형제 중 다수”는 누구인가? 왜 바울의 투옥으로 오히려 신뢰를 얻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겁 없이 전하게 되었나? 누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파했나?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한 어떤 이들은 누구인가? 왜 어떤 이들이 시기와 경쟁심으로 바울을 힘들게 하고 싶었던가? 그런데 왜 바울은 마이동풍이었나? 오히려 바울은 왜 “기뻐하고 또 기뻐하리라“했는가? 바울의 기쁨은 그리스도의 전파에 있지 않았던가?
왜 바울은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을까? 바울이 로마에 잡힌 신세가 된 것이 오히려 복음의 진전을 가져왔기 때문인가? 십자가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바울은 값으로 살 수 없는 생명을 값없이(priceless) 나누어 줄 수 있어 기뻐했던 것인가? 바울 자신은 갇혀 있어도 복음의 능력은 갇힐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복음이 진전하는 것을 감지한 때문이 아닌가? 나는 바울의 기쁨의 원천이 자신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게 된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히11:38)이 바로 바울 아닌가? 나는 무엇을 나의 기쁨이라 정의하는가? 내가 희희낙락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육신에 속한 나의 혼이 기뻐하는 것을 나는 기뻐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나의 영이 기뻐하는가? 나는 세상에 속한 잠시잠간의 기쁨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기쁨을 추구하며 기뻐하고 있는가? 그것은 삶의 푯대의 문제가 아닌가? 내가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좌충우돌 흔들리는 인생의 배에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항해하고 있는가? 나의 푯대는 과연 그리스도 예수인가? 나의 인생의 광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가 내 삶의 푯대가 되어 나를 잡아 주셔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심으며 나의 시선을 예수께 집중하도록 성령 하나님을 통해 일하고 있는 사도 바울에게 쌩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