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9:1-10 (4/22/2024)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셨다? 부자이고 세리장인 삭개오 등장과 관계가 있을까? 삭개오는 왜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나? 삭개오는 예수를 오직 인자로만 알았던가? 키가 작은 삭개오는 빽빽한 군중 때문에 예수를 볼 수 없자 꾀를 내어 돌무화과 나무위로 올라가 자기 시야를 밝힌다. 삭개오는 왜 예수가 그토록 보고 싶었을까? 그런데 예수께서 지나시다가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를 쳐다보시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하신다. 아니 어찌 삭개오 이름을 아셨을까? 역시 신성을 입으신 예수이시기에? 그리고 왜 “속히”라 하시나? 예수를 향한 삭개오의 간절함을 읽으신 것인가? 신바람이 나서 급히 나무를 내려오는 삭개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삭개오는 왜 그토록 기뻐하며 예수를 환영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 있던 무리들이 수군, 수군. 왜 그럴까? 왜 삭개오는 죄인으로 낙인 찍혀 있나? 그는 세리정도가 아니라 세리 대장 (chief tax collector)이다. 세리는 동족에게서 세금을 징수해 유대인들을 탄압하는 로마에 바치고 부를 쌓은 매국노? 그래서 무리들이 예수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가신다 한 것인가? 그런데 왜 삭개오는 갑자기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겠다고 예수께 아뢰는가? 그것도 자기 재산의 절반을 들여서? 그뿐인가? 혹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배상하겠다고? 그런데 그때 왜 예수께서 삭개오가 구원 받았다 하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선포하실까? 그리고는 왜 예수께서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오셨음을 밝히 말씀하시나?
성령 하나님,
삭개오는 왜 예수를 그토록 갈망해 보고
싶어 했나요? 그가 이미 복음을 들었던
것일까요? 예수께서 복음의 주체이심을
알았던 것일까요? 삭개오는 세리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인
이었지요? 그는 예수가 자기를 그 감옥
에서 해방시키실 분임을 확신했던 것이
아닐까요? 삭개오는 설레임과 기대감
으로 나무에 올라갔지요? 그런데 예수
께서 그가 나무위에 있는 것을 아실뿐만
아니라 이름까지 부르시니 그가 기절
하지 않은 것이 기적이지요? 더구나
집까지 방문하겠다 하시니 그는 기뻐
어찌할 줄 몰랐겠지요? 삭개오는 그
순간 비판과 판단과 정죄에서 자유를
얻은 것이지요? 그때 삭개오의 마음에
자기와 같이 멸시와 천대 받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연민이 꼿힌 것일까요?
그래서 가난한자들에게 소유를 나눈다
했나요? 그런데 왜 그때 예수께서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하셨나요? 삭개오의
순수한 이웃사랑 때문에 “빙고!” 하신 것
인가요? 예수의 핵심 사명 “잃어버린 자
를 찾아 구원하러 왔음“이 현실 되는 것에
행복 하셨나요? 나도 삭개오와 같은 사회적
통념으로 물들어 버린 세상에 살고 있지요?
세상 잣대로 무시하고 멸시하는 세상. 실은
너나 할 것 없이 흙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일
뿐인 것을. Home Depot에 가끔 전도하러
가면 일거리를 위해 서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나는 그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나요? 내가
예수의 아픈 심정으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의 선물을 주러 다가가고 있나요? 하늘
내가 하늘 아버지의 시각으로 그들을 대하게
하소서! 세상에서는 Nobody지만 삭개오처럼
예수께 Somebody되는 그들이 되게 하소서!
Nobody can be somebody in Jesus Ch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