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9:1-7 (6/26/2024)
왜 섬들에게 들으라 하시나? 왜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내 백성들이라 하시나? 세상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 누구를 태에서부터 부르셨는지 알라 하시는 것인가? 어미의 복중에 있을 때부터 “누구”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이미 아셨다는 것인가? 누구의 입을 왜 날카롭게,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셨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하나님의 종이고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진리로 건져 내신다는 것인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그런데 왜 헛되이 수고하고 무익하게 힘을 다 썼다 하시나?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인생들에게 그렇게 보였다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모든 판단과 보응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라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하나님의 종으로 세우셔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모이도록 하였으므로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 영화롭게 되셨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의 힘”이 되셨음을 보여 주시려는 것인가? 결국 하나님의 종 되신 예수는 야곱 지파들을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할뿐 아니라 이방에게도 예수가 빛이 되어 구원을 온 인류에게 베푸실 분이시라 할렐루야!
나는 하나님의 일관된 관심을 읽는다. 아브라함 후손으로의 혈통적 구원만이 아니라 열방이 다 주께 돌아오기를 소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접촉이 된다. 지엽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만민을 향한 예수 나라가 하나님의 꿈이라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구구절절 말씀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21세기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고토로 돌아오라 말씀에서 종용하고 계시건만 특히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은 물질만능주의라는 신에 빠져 알리야 할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하니 바벨론 시대나 마찬가지 상황이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나의 신앙은 어떤가? 마지막 때를 치닫는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는 선교적 교회(Missionary Church)로 살라 하시는데 나의 신앙은 유람선 수준이 아닌가? 나는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들으며 이번 KWMC를 예배를 통해 나의 신앙의 활로를 넓혀지기를 고대한다. 그리하여 내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를 살아 내도록 나의 환경과 상황을 하나님께서 재정비하시어 나의 기도의 용량 확장을 성령 하나님께 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