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24:12-18 (11/8/2024)
“거기 있으라”는 어디인가? 왜 하나님께서 “친히” 돌판에 기록하셨나? 왜 모세는 여호수아를 데리고 가나? 왜 “하나님의 산”이라 부르나? 왜 장로들은 기다리라 하나? “무릇 일”이란 무엇을 뜻하나? 아론과 훌이 무엇을 담당하게 되나? 왜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물렀다 하는가? 왜 엿새동안 산이 가리워져 있나? 왜 일곱째 날에 부르시나? 일곱째 날의 의미는? 구름 가운데 부르신다는 무엇을 말하는가? 왜 여호와의 영광이 “맹렬한 불같이” 보였다 하나? 무엇을 뜻하나? 왜 모세가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하나? 왜 모세는 40일 낮과 40일 밤을 시내 산에 있어야 했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친히 돌판에 쓰신 십계명을 주시려고 모세에게 산으로 올라 오라 하신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엿새 동안 모세는 산을 가린 구름 속에서 기다려야 했고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모세를 부르셨을까? 모세는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뿐인가? 하나님이 부르셔서 구름속으로 들어가 산 위에 올랐는데 왜 그때도 모세는 사십일을 밤낮으로 기다려야만 했던 것일까? 하나님은 무엇을 가르치시려 한 것일까?
나는 가끔, 아니 자주 그리스도 예수가 이 땅에 속히 오시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그 생각은 내 생각이고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실까?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모세가 구름 속에서 줄곧 기다렸듯이 하나님은 내게 기다리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사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생들이 지옥이 아니라 모두 천국행이 되어 하나님과 영원히 살기를 애절하게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나의 욕심으로 예수께서 빨리 빨리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슥14:4)가 현실이 되기를 바라고 있지 않은가? 모세가 구름속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귀하고 귀한 십계명 돌판을 받았듯이 하나님은 내가 하늘 백성으로 성장하도록 성숙을 위한 진통을 거치는 훈련을 하고 계시기도 하신 것이 아닐까? 아! 나는 언제 철이 들까?
성령 하나님,
빨리빨리 아니라 진득하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하소서! 사실 내가 세상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성경 그대로 이루어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나도록 안내하고 또
인내하고 계신거죠? 내가 기다림의 신비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픈
으로 찾아가기를 원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