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5:1-14 (9/12/2024)
“그 후에”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장로들이 조상의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신 것을 마침내 믿고 하나님께 경배한 후에 드디어 모세와 아론이 대제국의 왕 바로를 알현한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내 백성을 보내라”며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선포한다. 우상의 영으로 충만한 바로의 반응은 “여호와가 누구이기에”다. 허술한 모습의 모세와 아론을 보고는 코웃음을 쳤겠지. 그리고 잡신이 우글거리는 애굽에서 자신이 왕초 신으로 자리매김하던 바로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라니 황당했겠지? 단연코 보내지 않겠다고? 모세와 아론은 물러서지 않고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의 제사를 원하시니 보내라 슬쩍 밀어붙인다. 그리 아니하면 전염병이나 칼의 위협이 있을 것이라 엄포(?)를 놓는다. 그런데 왜 사흘 길쯤 떨어져라 한 걸까?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절기” 지키는 것을 must로 하라 운을 띠우신 것일까? 그런데 애굽왕은 오히려 더 삐딱해져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동을 멈추게 하려는 것으로 해석하고 노역 관리인들에게 벽돌 만들 자재도 공급하지 말고 원자재를 스스로 구해서 만들도록 일을 시키라고? 그들의 노역에 더욱 무게를 실어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고? 모세와 아론이 거짓말을 한다고 착각한 바로. 역시 바로 수준의 해석이다. 이제 백성들은 짚도 자체 구해야 하고 벽돌의 수량도 자재를 공급받을 때처럼 생산해야 하고. 벽돌의 수량을 채우지 못하냐며 감독들은 이스라엘 기록원들을 때리고 난리다. 아니 이 웬 날벼락인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모세.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나타난 모세라면 “내 백성을 보내라”했을때 바로는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을 설설 기며 알겠다고 즉각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역에서 해방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나님을 도무지 모르는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고진감래는 커녕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지에 몰리다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조상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면 곧바로 조상들에게 베푸셨던 그 이적과 기사를 기억하며 하루아침에라도 애굽을 뒤엎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이스라엘 자손들은 콧노래를 불러야 했던 것 아닌가? 그들이 Tom Hess의 “내 백성을 가게 하라”에서 알리야에 대한 성경 구절 700개를 알았더라면 비록 현실은 아수라장이지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하나님이 주실 승리를 흔들며 바로 앞에서 서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오늘날에 물질의 노예가 되어 알리야하지 못하는 미국과 캐나다 유대인들을 생각한다. “내 백성을 보내라”하셨던 그때의 하나님의 심정. 이스라엘을 향한 언약에 묻어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 유대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마지막 보루같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돕도록 11월 선거에 하나님의 주권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선출되도록 강권적으로 역사하시기를 간구하게 하소서! 예수의 피로 살아난 미국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똘똘 뭉쳐 기도의 열풍으로 서로를 일깨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