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63:7-19 (7/23/2024)
이사야는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끔찍하게 여기셨는지 폭로(?)하기 시작한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이 왜 그토록 엄청난 일인지 깨달으라며 하나님의 은총을 선포하고 있지 않은가? “거짓을 행하지 않는 자녀”? 그러한 자들로 만들어 가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의지인가? 한 분 하나님, 우주의 통치자, 창조주 하나님께서 구원자이시기에 유대인들이 당하는 모든 환난에 함께 하도록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그들을 구출해 하나님 품에 안아 주셨다는 것인가? 그런데, 그런데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께 반역하여 하나님을 근심하게 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유대인들의 대적이 되셨다는 것인가? 유대인들은 이 사실 자각하고 있는가? 아니 오히려 모세의 때에 홍해 운운하며 그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나님이 영광의 팔로 홍해의 깊은 곳으로 이끄시고 광야에서도 붙잡아 주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는데 그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계속 헛소리하고 있지 않은가? 하늘 보좌를 향해 애절한 마음으로 하소연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열심과 권능으로 행하셨던 모든 것을 기억했다는 말인가? 그래서 급기야는 답답한 가슴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멈추신 것이 아니냐며 반문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는 마침내 정신이 들었는지 하나님이 자기들의 아버지라며 유대인들을 구속하시는 여호와라 하셨는데 어찌 주와 멀어지게 하셔서 자기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느냐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게 하셨다며 적반하장 격으로 하나님 앞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왔건만 예루살렘 성을 원수들이 차지하였으니 하나님의 이름이 없는 자들 같이 되었다며 하나님께 통사정을 하며 울부짖고 있다 할까?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요 아버지시라 토로하며 민족을 위해 중보자로 꿋꿋하게 서 있다. 그는 가감하지도 않고 민족의 악행을 하나님 앞에 아뢰며 세속의 길에 선 이스라엘을 스스럼없이 고발하고 있지 않은가? 비록 이스라엘이 빗나갔지만 본질적인 자기들의 신분은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며 본래 신분으로 회복시켜 달라 절절하게 외치고 있는 이사야. 하나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이방 사람들의 눈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과는 무관한 사람들로 보이고 있다며 탄식하는 이사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된 이스라엘. 자기들을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다시금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거할 수 있게 해 달라하는 이사야.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심을 보여 달라 애절하게 구하는 중보자의 아픈 외침이 하늘을 뚫고 있지 않은가?
나는 중보자인 이사야에게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자부심을 읽는다. 그리고 가차 없이 자기 민족의 죄성을 하나님께 아뢰는 솔직함으로 그의 열려있는 영적 시야를 느낀다. 나는 어떤가? 내가 사는 미국, 디아스포라로 나를 미국에 심어주신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기대하고 계실까? 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미국의 마귀 적 보편화를 보며 진정 분노하고 있는가? 나는 그 죄악을 도외시하고 있지 않은가? 나를 하나님 백성 만드시고 하나님은 내가 청교도 정신으로 시작한 미국의 정체성을 회복하도록 내가 기도하기를 원하시지 않을까? 영적 시야를 가지고 기도하는 이사야에게서 중보자의 중대한 역할을 배우며 내가 중보자로 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다. 내가 매일의 삶속에 중독되지 아니하고 현실의 정황을 말씀으로 조명하여 볼 수 있게 하소서! 나의 영적 둔감함을 깨워 주소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 같은 우리가 함께 중보자로 일어나 세상의 죄악을 고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도록 하나님의 아픈 가슴을 품고 회개하는 하나님 백성으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