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5:11-24 (4/6/2024)
“또 이르시되” “두 아들”비유. 둘째 아들 등장이다. 그런데 왜 둘째는 아버지에게 분깃을 달라 하나? 분깃은 유산분배라 하는데 그것은 아버지 사후에 하는 일 아닌가? 왜 아버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순순히 재산을 둘째에게 나누어 주었을까? 재산을 두둑이 받은 둘째는 신바람이 나서 아버지의 감정이나 아버지의 노후는 안중에도 없이 다른 지역이 아니라 아예 먼 나라로 훌쩍 떠난다.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까? 떠나는 둘째는 받은 재산을 움켜쥐고 휘파람을 불며 신바람이 났겠지. 아들은 단숨에 돈의 노예로 전락해 허랑방탕 탕진해 버린다. 재산은 몽땅 날아가고 설상가상으로 둘째가 이주한 나라에 큰 흉년이 든다. 다행히도 Job을 얻기는 했는데 돼지치기. 돼지치기를 유대인은 수치로 여긴다 하는데 둘째는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 don't care. 하다못해 돼지 먹이 쥐엄 열매라도 먹을까 했지만 그것조차 얻을 수 없으니. 이때 둘째 아들 머리에 아버지 집의 풍족함이 떠올랐던가? 그리고 어찌 아버지께 돌아 갈수 있을까 고민한다. 염치고 뭐고 다 던져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극한 상황이니 어찌할꼬? 갑자기 둘째의 마음을 죄책감이 뒤덮는다. 그래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야. 내가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 분명히 죄를 지었으니 아버지 집의 품꾼으로라도 써 달라 통사정을 해야지. 둘째에게 회개의 영이 함께 한다. 감사! 감사! 그리고는 아버지께로 길을 떠난다. 멀리 아버지 집이 보이는데 누군가 달려오고 있다. 아니! 아버지 아니신가?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마자 덥썩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놀란 둘째는 마침내 아버지 사랑에 눈이 떠졌을까? 아버지는 종들에게 잔치를 벌이자며 아들을 위해 값비싼 옷과 신을 가져오라 한다. 그런데 가락지는 왜? 무슨 의미인가? 공식적 아들 인증표? 왜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죄를 깨달았으니 영적 부활? 아들이 살았고 잃었던 아들을 다시 얻었다 아버지가 선포하니 아버지 집 사람들이 주인의 즐거움에 신바람이 나서 동참한다.
성령 하나님,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둘째 아들
을 억지로 돌아서게 하지 않는
아버지. 그러나 그 아들을 가슴
저리도록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
둘째 아들의 아버지로 하나님의
성품을 만납니다. 물질과 쾌락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다 척박한
환경의 도움으로 죄를 지었음을
아는 둘째 아들. 죽은 영혼 살아나
마침내 아버지 사랑에 눈이 열린
그 아들이 바로 하나님의 인내와
은혜로 구원된 인생들이지요?
둘째 아들이 죄를 자각하듯 나도
수시로 나의 죄를 보게 하시고
예수가 입혀주신 영적 정체성으로
하나님 사랑에 푹 빠져 이 땅을
살아내는 내가 되게 하소서!
아멘! 아주 오래전 몇십년 전에 나는 첫째 아들의 행동을 이해했었다. 그러나 지금....사랑과 긍휼의 아버지 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고 동생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