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6:21-36 (10/18/2024)
“각 사람이 먹을 만큼만 거두었다“ 드디어 훈련이 된 것인가? 그런데 왜 여섯째 날에는 갑절의 만나를 걷으라 하시나? 지도자들이 모세에게 보고하자 여섯째 날은 거룩한 Sabbeth로 아침까지 먹을 것을 챙기라며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 보관을 위한 요리법까지 세밀하게 일러준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리 아침까지 두어도 만나가 상하지 않다니! 만나 역시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런데 칠일째는 거두러 나가도 없을 것이라 했건만 또 불순종하는 이들이 있으니 어찌하랴! 볼지어다! 7일째는 안식하도록 6일째 되는 날 이틀 치 먹을거리를 주셨음을 반복해 말해 줄 수밖에 없는 모세, 혈압 오르지 않았을까? 그들의 아침 식사 ”What is it?“을 왜 만나라 불렀을까? 왜 만나를 대대 후손에게 보이도록 간수하라 하시나? 광야에서 먹었던 양식을 후손들에게 보여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살아났다는 것을 가르치라 하시는 것 아닌가? 모세는 즉각 만나를 항아리에 넣어 증거 판 앞에 둔다. 증거판은 무엇인가? 가나안 땅에 도착할 때까지 만나로 40년 동안 똑같은 아침 메뉴. 그러나 굶기지 않으셨기에 감사가 넘쳐야 하는 것 아닌가?
먹을 끼니까지 챙겨 주시며 안식을 갖게 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자손은 그냥 하나님 말씀만 따라다니면 되는 것 아니었나? 그러나 꽁수를 쓰는 인간의 본성이 고개를 쳐든다. 알량한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일곱째 날도 만나를 거두러 나가면 땡잡지 않을까 행동한 이스라엘.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2:4) 사실 이스라엘 자손만 비난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어떤가?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라 하시는 것을 얼마나 인식하며 절제하고 있는가? 내 계획에 붙잡혀 나도 모르게 따라가다가 아차하고 돌아서는 내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오면 그 생각에 몰입하고는 행동으로 옮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이래도 되나요 묻는 습관이 가끔이 아니라 순간순간이어야 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10:35)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가 아닌가? 말씀이 나를 따라와 책망하게 하지 않고 내가 말씀을 따라다니는 예수의 종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못 말리는 인생. 하나님께서 그토록 절절히 적어 놓으신 말씀을 알아 듣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처절한 인생. 그러나 나를 내치지 않으시고 주일을 주셔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시다니. 하나님의 자비를 내가 어찌 측량하리요? 그래서 예배드리러 올 때 나는 그토록 기쁜 것인가? 진정한 쉼이 예배를 받으시는 예수 안에 있음을 내 영이 체험하기에 나도 모르게 내가 행복의 미소를 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직 하나님 명령에 순조하는 것이 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