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5:25-32 (4/8/2024)
“맏아들“? 그렇지! 둘째 아들이라 하니 형님이 있었겠지. 맏아들이 밭일을 끝내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데 아니 웬 풍악소리가 집에서? 종에게 웬일이냐 물으니 뜻밖에 답을 듣는다. 동생이 건강하게 돌아 와서 아버지기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고? 그 소식을 들은 맏아들 반응이 시원치 않다. 왜 맏아들은 분노가 복받쳐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나? 낌새를 챈 아버지가 아들을 달랜다. 그랬더니 맏아들이 아버지한테 따져 묻는다. 아니 나는 몇 해를 아버지위해 성심성의껏 일했건만 친구를 불러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도 주지 않더니 아버지 유산을 횡령해 허랑방탕 창기와 놀다 거렁뱅이로 돌아온 ”이 아들“은 살진 송아지를 잡아 party를 벌여 준단 말이요? 왜 맏아들은 이토록 부글부글 분을 터뜨리는가? 배은망덕하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따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아버지는 부드러운 언사로 아들을 달랜다. 너는 나와 항상 함께 있지 않았니? 내 소유가 모두 네 소유인 것 모르니? 그리고 아버지는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온 것에 대한 아비의 기쁜 심정을 토로한다. 그러나 맏아들은 마이동풍. 맏아들의 반응에 아버지는 너무도 가슴이 아리지 않았을까?
성령 하나님,
왜 맏아들은 돌아온 동생에게 아멸찬 무관심으로
일관하나요? 왜 돌아온 둘째로 기뻐하는 아버지와
동조하지 못할까요? 맏아들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아버지에게 순종하지만 사랑이 없나요? 왜 동생을
받아들이는 아버지에게 분노하나요? 왜 자기의 선한
행동만 내세우나요? 자기 의에 빠져 교만의 덫에
걸려 있나요? 죄를 자백한 동생보다 오히려 맏아들이
패륜아가 아닌가요? 왜 잔치에도 참여하지 않나요?
왜 잔치에 함께 하는 즐거움을 거부하나요? 혹시
맏아들로 나를 드러내고 계시나요? 내가 신앙의 연조가
깊다고 내심 교만하지 않은가요? 하나님의 의보다 나를
드러내고 있지 않나요? 잃어버린 둘째가 돌아 올 때
기뻐 춤추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나의 관심이 있기는
한가요? 내가 얼마나 아버지의 마음으로 길 잃은 영혼에
관심을 쏟고 있나요? 내가 어느새 맏아들처럼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닮아 가고 있지는 않나요? 이번 큐티 세미나를
통해 내가 얼마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만나기를 소원
하는지 나를 돌아보게 하소서! 내가 잃어버린 영혼들을
맞아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소유하게 하소서!
형식적인 종교 생활에 빠져있는 맏아들들이 말씀 묵상
으로 아버지를 깊이 만나도록 세미나가 하나의 프로그램
이 되지 않게 하소서! 부족하지만 세미나 준비에 나도
섬길 수 있게 하소서! 우리 QSA가 둘째를 반기는 아버지
의 심정으로 큐티 세미나를 위해 함께 기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