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5:22-27 (10/15/2024)
이스라엘이 어디서 나왔나? 수르광야에서 마라는 얼마나 되나? 마라 이름은 이스라엘이 지었나? 왜 이스라엘은 모세를 원망했던가? 어떠한 심정으로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을까? 왜 하나님은 “한 나무”를 지적해 주신 것일까? 한 나무의 상징은 무엇인가? 왜 그 나무로 물이 달게 되었을까? 그것이 하나님의 권능? 구원의 비밀이 아닌가? 왜 그때 법도(statute-a rule of an organization)와 율례(regulation-a rule or directive made and maintained by an authority)를 정하셨나? 그리고 왜 시험하셨나? 왜 순종하면, 지키면 이라는 조건(?)을 다시나? 왜 순종할 때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말씀하시나? 그후 12개의 물샘과 종료나무 70그루가 있는 엘림에 장막을 치는 축복을 왜 주신 것일까?
마라를 만난 이스라엘 백성들 드디어 하나님의 강훈련에 돌입했다 할까? 그런데 쓰디 쓴 마라가 모세 탓인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원망인가? 일이 잘되면 내탓, 안되면 남의 탓하는 인간의 속성을 어찌하랴? 하나님은 이들의 죄성을 족집게 같이 짚으시기에 법도와 율례를 정하신 것 아닌가? 행동 기준을 세워 순종하는 하나님 백성으로 키워가시려는 하나님은 그러나 또한 엘림의 축복도 주신다. 나는 현재 쓰디 쓴 마라의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할까? 인생이 장미꽃인줄만 알았던 시절. 쓴맛은 없고 단맛이 인생의 전부인줄 알았던 착각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버리고 나는 마라 앞에 서있다. 내게 “한 나무”를 언제 던지실 것인가? 아니 이미 주시지 않았나? 십자가가 그 나무 아닌가? 그래서 나의 마라는 서서히 단맛으로 변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나를 서서히 마라로 끓여 진국 설렁탕으로 만들고 계신 것이 아닌가? 나는 기도 중에 내가 선택권을 가지고 묻지마를 행사하는 나의 마라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가슴이 무너진다. 아직도..아직도...내가 무엇을 안다고? 내게 무슨 지혜가 있다고 성령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가 결정하는가? care giver를 누구를 택해야 할지 내가 어찌 아는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사람 천사를 보내주시기를 기도하게 하소서! 크고 작은 일 오직 아빠 아버지께 여쭈어 결정하는 지혜와 습관이 내것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나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백성에게 결국 엘림의 축복 주기 소원하시는 하나님께만 내 시선을 모으게 하소서!
늦은밤, 진국 설렁탕을 먹는 것 같이 집사님의 진한 말씀을 읽고 은혜 받고 갑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두고 순종하며 가시는 삶이 주님의 축복으로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