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0:21-29 (9/30/2024)
“더듬을 만한 흑암”(a darkness so thick you can feel)이라? 어느 정도의 어두움일까? 맹인이 볼수 없어 헤매는 상태 같은 상황? 한 치 앞도 못 보는 어두움. 왜 흑암 재앙을 내리시나? 모세가 이번에는 지팡이가 아니라 손을 내밀자 흑암 재앙이 임한다. 왜 삼일동안 흑암이 있게 되나?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를 예시하시나?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의 거주지 고센 땅에만 빛이 있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 소속과 아닌 자들과의 확연한 차별대우? 이쯤되면 바로가 정신 차려야 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아이들도 함께 보내겠다 하나? 그런데 왜 양과 소는 남겨 두라 하나? 모세는 팍 쎄게 반박한다. 하나님께 드릴 제사의 번제물을 왕이 준비하라! 그리고 어느 가축으로 제사를 드리게 될지 모르니 한 마리도 남김없이 데리고 가야 한다며 바로의 귀에 못을 박는다. 그러나 바로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싱숭생숭. 하나님 마음 잡수신대로 완악한 바로는 여전히 변덕 덩어리다. 그러더니 바로 벌컥 화를 내며 모세에게 다시는 얼굴을 보이지 말란다. 다시 얼굴을 보이면 죽을 것이라 모세에게 엄포를 놓는다. 흥!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는 것 아닌가? 겁날 것 없는 모세는 벌떡 일어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획^^ 바람을 일으키며 바로 앞을 떠난다. 모세, 드디어 하나님 백성의 옷을 입은 것인가?
“빛이 생겨라!”(창1:3)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창1:4) 자연 만물을 통치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엇인들 못하실까? 흑암 재앙으로 애굽인들에게는 암흑이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주지 고센 땅에는 여전히 빛이 있다니.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무엇을 하시려나?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계신 것이 아닌가? 나는 예수의 보혈로 인해 이미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고 나는 빛의 자녀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진정 내게 주시는 말씀 아닌가? 사방팔방 어두움이 지배하는 세상. post modernism이니 차별 금지법이니, 종교 다원주의 등등 거짓 우상으로 뒤덮인 애굽 같은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자각하지 않을 수 없다. 출애굽기 묵상을 통해 내가 창세기 때 하나님을 알현하는 것 같다 할까? 나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얼마나 접촉되어 있는가? 나의 하나님과의 교제가 피상적은 아닌가?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 그리고 히브리 민족에게만 만물의 통치자,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성을 깨우쳐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출애굽 상황에 놓인 내게도 진리의 절대성을 심고 계신 것이 아닌가?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but the Same God works all of them in all men)”(고전12:6) 출애굽 때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절대성(Absoluteness)의 하나님을 알아가는 통로는 역시 말씀! 나는 없음, 없음이라는 삭제된 구절이 없는 KJV을 읽고 싶어 집에 있는 책장을 뒤지니 다른 성경은 몇 권씩 있는데 KJV가 보이지 않는다. 옳다! 이번 기회에 나의 현대판 출애굽을 위해 KJV를 성령 하나님과 함께 읽어 가면서 나의 세상 애굽에서의 탈출을 꿈꾸어 볼까나?
시대가 바뀜에 성경해석도 그 시대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고 하는데...구약은 주님이 오시기 전이니까 그럴 필요성이 있겠다 생각들지만 시퍼렇게 변함없이 살아계신 삼위일체가 계신데 그 진리는 하나인데 왜 이상한 신학이 생겨 사람들을 혼동시키는지요?!!! 사랑과 자비와 화해와 연합도 오로지 주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에 의거하여,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분명히 성을 따로하여 창조하셨다는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나도 KJV 성경을 갖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