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8:3-27(10/23/2024)
왜 모세가 재판해야 했나? 200만명이 모인 공동체. 인간 죄성의 집합체. 탈도 많고 말도 많았을 현장. 그래서 모세가 시시비비를 가려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한 것인가? 장인 이드로는 모세 앞에 끝도 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했던 것일까? 모세는 이드로에게 서로 다툴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묻기 위해 모세에게 나오는 것이라 설명한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 묻는 것을 보니 이스라엘 자손 하나님 신뢰가 싹 튼 것일까? 모세에게 영적 권위가 있음을 인정했다는 뜻이겠지? 이드로는 모세에게 혼자 감당하다 끝내 지칠 것이라며 강경한 목소리로 내 말을 들으라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능력 있는 사람들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실하고 거짓을 미워하는 사람을 뽑고 둘째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우고 셋째 그들이 재판을 담당하게 하고 큰일일 경우만 모세에게 가져오도록 하라는 것이다. 모세는 장인의 제안에 따라 사람들을 세우고 큰 문제들만 모세가 처리하게 된 것이다. 장인의 제안을 따르는 모세의 열린 귀와 이드로의 지혜로운 조언으로 공동체의 질서가 잡힐 것이 아닌가?
모세의 겸손한 인품이 드러난다 할까? 느닷없이(?) 나타난 선민이 아닌 이방인 이드로의 행정조직 개편(?) 그리고 관리체제 제안을 서슴없이 받아들이는 모세의 겸손은 파란만장한 그의 삶의 결과물이라 해야 할까? 그런데 이방인 장인 이드로는 어찌 능력 있는 자의 정의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하고 불의의 이익을 미워하는 자”로 규정할 수 있었을가? 나는 이방인 이드로에게 부어주시 하나님의 지혜를 접하고 또한 겸손한 자의 모델로 모세를 세우신 하나님을 만난다. 큰 소리치며 거들먹 거려도 되는 모세 아니었나? 하나님과 직통(?)이던 모세. 그러나 자신의 자만에 갇히지 않고 자신을 열어 이드로의 제안을 수락하는 모세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아닐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배우는 자세를 지닌 모세의 모습이야말로 하나님의 기쁨이 아닌가? 모세의 40년간의 양치기 삶을 통해 애굽 왕자의 자만심에서 벗어나도록 하나님께서 이끄신 훈련이 아니었나? 그리고 출애굽의 선두주자로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준비시킨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었나? 나는 남편의 병고에 날마다 허덕이면서 나를 다듬어 가시고 그 와중에 도움을 손길을 보내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내게 인생이 무엇인지 배우게 하시기에 내가 할 것은 오직 하나님 경외임을 새롭게 인식한다. 내가 기도의 자리로 나갈 때 “아빠! 나 진짜 아빠 딸 맞지요?”를 나도 모르게 외친다. 그것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나로 외치게 하신 것이 아닐까? 간단없이 진행되는 훈련에 나는 진이 빠지고 맥도 빠지지만 나의 하나님이시기에 그 와중에도 내게 힘을 실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신가? 훈련의 산물로 내게 겸손을 안겨 주실 것인가요? 진정 하나님 경외를 터득하게 하실 것이지요?
항상 성령님의 은혜로 힘내시며 더욱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시는 울 집사님 화이팅!! 언젠가는 끝이 있을 것이고 아득히 이 날들을 돌아보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화이팅! 엘리에렐의 하나님이 이제까지 함께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