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2:11-15 (9/5/2024)
모세가 장성한 후? 몇 살쯤 되었나? 왜 자기 형제들이라 표현하나? 애굽의 왕자이지만 그는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 아닌가? 어찌 그것이 가능했던가? 유모로 모세를 돌볼 때 모세에게 내장된 히브리인의 정체성이 일을 한 것이 아닌가? “고뇐 노동”이 담은 의미는? 애굽 사람이 “자기 형제”를 치는 현장을 목격한 모세라? 왜 모세는 좌우를 살펴보고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했나? 누구를 의식한 것일까? 애굽 사람들? 왜 애굽 사람을 죽이고 모래에 사장시키기 까지 한 것일까? 다음날 모세는 히브리 동족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고 역시 끼어든다. 어찌 동포를 치느냐 간섭하자 치던 자가 대뜸 대든다. 재판관도 아니고 다스리는 자도 아닌 주제에 왜 끼어드느냐며 어제 애굽 사람을 죽인 것 같이 내게도 하려느냐 하자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이 탄로 난 것에 덜컥 겁을 먹은 것인가? 마침 바로가 사실을 알아모세를 찾는 것을 알고 급히 미디안 땅으로 줄행랑을 친다. 애굽과 미디안 땅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왜 모세는 우물곁에 앉아 있었나?
모세는 노예처럼 노동하는 히브리인들을 보며 의분이 가득해 애굽 사람을 죽인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 모세의 성장 배경을 생각해 본다. 레위인인 모세의 친 엄마는 유모로 모세의 신앙교육에 집중했을 터이고 공주의 아들로 40년간을 애굽 문화 속에서 살았던 모세는 우상이 득시글한 애굽에서 정체성의 괴리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모세의 정체성에 멘붕이 생긴 것이 아닌가? “좌우를 살피다”라? 애굽의 신들 문화 속에 살던 모세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의식할 정신 체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인가? 자신이 히브리인도 아니요 애굽인도 아니라는 정체성의 혼돈에 빠진 모세를 나는 만난다. 나의 정체성은 어떤가? 내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확고한 영적 정체성을 나는 가지고 있는가? 나는 주변을 둘러 볼것이 아니라 하늘을 올려다보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자로 이땅에 잠시 살고 있다는 현실이 나의 사고와 행동에 베어있는가?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2:6) 말씀이 내가 하늘의 시민권자라는 나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