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1:27-2:4 (8/5/2024)
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하나?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왜 복음을 위하여 한 마음이 되라 하나? 누구에게 멸망의 증거이고 누구에게 구원의 증거가 되나? 하나님께서 은혜로 무엇을 주셨나? 어떤 것이 예수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인가? 바울을 통해 보게 된 “그와 같은 싸움”이란? “내 안에서 듣는바”는 무엇인가? 왜 뜻을 합하라 하는가? 왜 한 마음을 품으라 강조하는가? 같은 사랑이란 무엇을 말하나? 바울은 왜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 하나? 다른 사람들의 일이란 무엇을 뜻하나? 그리할 때 “나의 기쁨”이 무엇으로 충만하게 된다 하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라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사실 바울이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바울은 그리스도로 무장되어 있어 감옥 생활이라는 현실에 쫄지도 떨지도 아니하는 담대함을 역력히 보인다. 바울은 은혜를 주신 이유를 풀어주고 있다. 그 은혜는 예수를 믿는 믿음 뿐 아니라 예수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아닌가? 고난도 은혜라고? 나는 바울의 은혜에 대한 해석을 묵상하며 세상에 젖어 있는 나의 가치관과 부딪친다. 어려움 없이 고난당하지 않고 세상 spec을 잘 쌓아 나가면 복 받은 인생이라는 것이 세상 가치관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어도 곤고한 인생을 산다면 저주 받았다 하지 않는가? 나는 예수의 고난을 생각해 본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아 보이는 예수, 십자가에서 매를 맞고 피를 철철 흘린 예수, 하나님이 외면한 것 같은 예수의 인생이 저주 받은 인생인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 확증자로 쓰임 받는 것을 아셨기에 자신을 통해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혀 있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나는 나의 고난의 의미를 아는가? 나는 나의 고난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 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붙잡고 고난을 통과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