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후 1:1-12 (8/22/2024)
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있는 교회라고 굳이 지칭했던가? 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의 은혜와 평강이라 표현하나? 왜 이들의 믿음 성장과 서로를 향한 넘치는 사랑에 대해 감사했다 하나? 왜 ”그러므로“라 하나? 이들이 견디고 있는 박해와 환난은 무엇인가? 이들은 어떠한 인내와 믿음으로 이겨 나가고 있었나? 왜 자랑하되 ”친히“ 자랑한다 하나? 이들이 받는 고난을 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라 하나? 왜 그들의 고난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게 하나? 왜 그들이 받는 고난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것이라 하나? 하나님의 공의를 무엇으로 표현하나? 환난 주는 자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자에게는 최후의 안식과 보상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언제 나타날까? 예수께서 마지막 때에 어떻게 나타나시나? 멸망의 형벌은 결국 무엇에 대한 대가인가? 이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제목은 무엇인가? “부르심에 합당한 자”는 무엇을 뜻하나? “모든 선”이란? 어떤 “능력”으로 이루게 하신다는 것인가? 예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왜 이들이 예수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한다니 무슨 뜻인가?
데살로니가인들이 겪는 박해와 환난, 인내, 고난, 형벌이라는 단어가 특히 내 눈에 띄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그것들을 싫어한다는 증표가 아닌가? 그런데 내 마음이 영광에는 활짝 열린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의 고난과 영광은 절대 분리 될 수 없다는 것을 감지하며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말씀 속에 담으신 하나님의 본심, 진심을 인지하며 나의 고난의 때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으로 돌파하기를 소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만난다. 성령 하나님! 내가 고난을 밟고 넘어서서 오히려 즐기는 차원이 되게 하소서!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까가 고개를 쳐든다. 흥! 나는 하나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하나님의 딸이니까 하나님께서 내 기도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니 먼저 감사한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렘32:27)가 나의 마음에 박혀 나를 설레게 한다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