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5:15-23 (9/13/2024)
드디어 이스라엘 기록원들이 바로를 찾아 항변(?)한다. 벽돌 만들 자재도 공급하지 않고 일을 시키고는 오히려 벽돌을 수량대로 못 만든다며 매를 때리니 이것이 애굽 백성의 죄가 아니냐며 과감하게 불평을 토로한다. 어찌 기록원들이 직접 상황을 그 시대의 최고의 통치자 바로 왕에게 아뢸 깡이 생긴 것일까?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아니실까? 바로의 대답은 뻔하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게을러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가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슨 뜻이야? 그리고는 헛소리는 걷어치우고 짚을 공급받지 못해도 벽돌 생산량을 채우라 명한다. 바로의 직설을 들은 기록관들은 드디어 화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미치게 되었음을 감지하고 떨리는 마음이 되어 나오는데 모세와 아론이 눈에 띈다. 그러자 너희들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다며 애굽이 이스라엘 자손을 죽일 것이니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의 판단을 받게 될 것이라 저주를 퍼붓는다. 모세는 심히 당황하여 곧바로 여호와께 나아가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학대받게 하시느냐고 더구나 어찌 이 엄청난 일에 나를 보내셨느냐며 상한 마음과 함께 공포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바로에게 들어가 하나님 시키시는 말씀을 전했는데 오히려 학대가 가증되었으니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즉각 구원하여 주지 않으시는지 불평(?)을 쏟아 놓았던 것일까?
모세는 아직도 자기에게 주신 출애굽 사명이 엄청난 축복인지 모르고 있다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애굽 왕자이던 자신이 바닥 인생으로 전락해 양치기 신세로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년 광야 살이를 했으니. 그런 모세가 느닷없이 나타나신 하나님께 설득(?)당해 첫걸음을 내딛고 바로 앞에 서기는 했으나 이 황당한 상황 앞에 뒷걸음 치고 싶지 않았겠는가? 모세는 하나님을 어느 수준으로 알고 있었을까? 모세가 물론 하나님을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1:1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지 않았나? “스스로 있는” 하나님을 모세가 얼마나 알수 있었겠는가? 이제 하나님은 먼저 모세에게 하나님을 드러내시기 시작하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모세는 급기야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첫발을 내딛게 되고 모세의 하나님 체험 일 단계가 시작되었다 할까? 모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도 그 하나님 체험 여정에 합류시키신 것이 아닌가? 모세도 이스라엘 자손도 고생 시작이다. 그러나 그 고생은 하나님 손안에 있는 고생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주시기 위한 목적 안에 있는 고생이다. 나는 어떤가?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나의 상상력으로 알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시지 않는가? 말씀 속에서 기도에서 그리고 삶에서 내게 보여 주시는 하나님은 내가 감당할 정도로만 내게 하나님을 보여 주시는 것이 아니실까? 단지 흙덩어리였던 내가 어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단숨에 알 수 있을까? 체험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내게 모세가 겪었을 황당함도 선물로 주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맞닥뜨린 노역의 현장도 내게 선물하고 계시는 것일까? 왜 그것들이 선물인가? 인간이라는 심히 제한된 존재의 감성과 이성과 지성으로는 감히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과 오묘함과 전지함을 깨달을 수 없다는 그 한계를 아시기에 삶의 매 순간을 거쳐 하나님의 손길이 지나감을 알게 하시고 급기야 그것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잔뜩 선물을 선사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를 예수의 이름으로 출애굽 시키신 하나님.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이스라엘 자손들이나 내가 지나는 고통의 시간들. 그러나 하나님이 입을 벌리라 하시니 나는 기대하며 입을 벌리련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쓰던 달던 모두 내게 선물이 된다는 것을 성령 하나님이 말씀으로 나를 설득하고 계시지 있지 않는가? 어찌하였던 나는 예수 이름으로 복 받은 인생. 나를 예수로 무장시켜 영적 뱃심을 키워가시니 감사가 나의 본분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