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7:1-7 (10/19/2024)
왜 이스라엘 자손을 “회중(congregation)”이라 부를까? 예비 배예비자들이라 은유한 것인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노정을 따라가다가 르비딤에 도착. 그런데 왜 “큰 오아시스”라 하는 르비딤에 물이 없을까? 하나님이 모르실 리가 없는데. 왜 모세에게 물을 달라며 다투는가? 원망을 넘어 다툼으로 돌입한 이들. 모세도 물이 없는 상황에 같이 처해 있건만 왜 모세에게 따지고 드는 것일까? 모세는 안타까운 마음에 왜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일깨우지만 마이동풍이다.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감히 하나님을 시험하다니? 다툼은 끝이 없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는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을 찾는데 왜 이스라엘 자손은 물을 달라고 다투고만 있는가? 왜 기도할 수 없었나? 하나님을 몰라서가 아닌가? 모세는 돌에 맞을 것 같은 급박한 상황이 되자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instruction을 주신다. 나일강을 치던 지팡이로 호렙산 반석을 치라!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모세앞에 서겠다 하시나? 반석위에 서시겠다는 것인가? 그리고 왜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 앞에서 지팡이를 쳤던가? 왜 모세는 “므리바”를 시험하는 곳, 다투는 장소라 명명할 수 밖에 없었나?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신지 아닌지를 시험한 것이라며 그들의 다툼의 동기를 꿰뚫어 보고 있지 않은가?
결핍을 기도로 해결하는 모세와 다툼으로 결핍을 내치려는 이스라엘 자손. 극명한 대조를 이루지 않는가? 문제 해결은 하나님 몫이라는 신뢰로 모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이스라엘 자손은 세속성으로 억지를 부린다 할까? 돌에 맞을 것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두려움과 긴박감을 하나님께 토설하는 모세. 그래서 그는 즉각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지 않는가? 하나님께 속속들이 하소연하는 다윗이 조상 모세 닮았다 할까? 사실 다윗은 아들에게 쫒기면서 더 심도있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던가? 나는 과연 어느 부류인가?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삶의 정황을 얼마나 세세하게 하나님께 아뢰며 도움을 청하고 보호받기를 원하고 있는가? 나의 하나님 신뢰와 나의 하나님 의지는 어느 수준인가?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내 안의 성령 하나님께 내가 무엇을 숨기리요? 피조물인 내가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니! 예수로인해 이 경이로운 축복이 내 것이 되었다니! 기도로 감히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과 소통하게 하시다니 놀라워라! 기도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힘이기에 나도 모세처럼 나의 생각과 판단을 몽땅 내려놓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붙들고 기도하게 하소서! 11월 5일 미국 선거와 10월 27일 한국의 차별 금지법 통과 방지를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여 주소서! 나는 기도의 강력한 힘을 붙잡고 내 마음을 다 쏟아 놓으리라! 성령 하나님 도와 주실꺼죠?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62:8)
막다른 골목에서 항상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시죠...! 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직 접 아직도 기도를 하지 못할까요? 아직도 갓난아이 젖먹이 믿음이라서일까요? 그리고 모세에게 하나님께 기도하라 요청하고 좀 기다리지 못했을까요? 너무나 절박한 나머지 아무것도 안 보였나 봅니다. 자신을 돌아 봅니다...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아버지 손을 놓지 말고 먼저부르짖어 기도하기를요! 집사님의 마음을 토하는 그 기도 아버지가 다 듣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