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4:1-9 (10/9/2024)
광야 길에 들어선 200만명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알기는 했을까? 단지 노예 신세에서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만 부여잡고 종횡무진 걷고 있지 않았을까? 여기저기 어린아이들 울음소리, 이리저리 뛰는 가축들.. 모세는 선두지휘자로 하늘만 바라보며 황당했을까? 그런데 마침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음성을 들려주신다. 가던 길을 돌이켜 장막을 치라! 어디에? 왜 하필이면 바알스본 즉 우상 숭배자들 거주지 맞은편 바닷가를 지정해 주시나? 노예살이하던 히브리인들이 광야에 갇혀있을 것이라 생각한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뻔히 보고 계신 것을 바로가 어찌 알리요?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제 덫에 걸린 쥐라 생각했을까? 그래서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적하도록 바로가 꽁수를 쓴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며 애굽인들이 하나님이 여호와이신 것을 알게 하시려는 원대한 계획으로 바로를 제압할 것을 모르고 별명이 “완악”인 바로는 대를 이을 장자 상실로? 아니면 애굽이 폭삭 망했다는 것 때문에 악에 받친 것일까? 특출한 병거 육백대와 모든 전략을 총동원하고 추적해 이스라엘 자손의 장막이 있는 해변에 다다른다. 그러나 어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담대하게 상황을 접했던 것인가? 엄위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비하하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 장막 안을 기웃거려본다. 하나님께서 바로가 추격할 것을 모세에게 흘리지 않으셨을까? 모세가 자세한 정황은 말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자손들 눈치채지 않았을까? 그런데 가까이 들려오는 소리. 막다른 홍해 해변에 장막을 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돌진 해 오고 있는 소리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무시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혼비백산은 커녕 오히려 ”담대히 나갔다“니 이 웬일인가? 그런 깡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이들은 애굽의 노예살이로 산전수전을 겪고 이제 공중전에 돌입하게 된 상황이 아닌가? 그 공중전에 맞설 담대함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온것이요 현실의 담을 뛰어넘을 담대함은 오직 하나님께 근거하기에 가능했을 것이라 나는 단호하게 정의 내리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세상은 애굽 군대가 돌진해 오듯 하나님과 역행하는 힘들이 모여 세상 지축을 흔들며 엄청난 소리로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마지막 때로 치닫는 세상의 위용 앞에 서 있는 나는 무엇으로 무장할까? 나는 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담대함을 입어야 하건만. 그래서 나를 말씀 묵상으로 성령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인가? 말씀 묵상이 아니면 초개같이 넘어질 나의 본질 때문에 그리고 뒤죽박죽인 나의 환경을 담대함으로 넘어가도록 성령 하나님이 나를 밀어붙이고 계신 것이 아닌가? 내가 QSA BZ Card 300장을 마련한 이유도 예수로 살아난 사랑 공동체가 말씀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함께 덧입고 싶어서가 아닌가? 또한 QSA website가 점화되어 불이 활활 타오를 때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 세상은 결국 ”우리로 인해“ 주눅 들지 않을까? QSA 명함(?)을 나누거나 카톡으로 명함을 뿌려 하나님이 주시는 담대함을 함께 입게 하소서! QSA여 일어나라!
🤓 정말 감동이네요. 시청각 큐티 ! 아멘 🤗
아멘 아멘!! First of all, 셈세하게 잘 설명해 주는 지도 감사합니다. 현실의 많은 문제 앞에서 말씀 묵상으로 무장하시며 담대히 살아가시는 집사님 참 장하십니다. 바로의 군대나 넘실거리는 홍해마져도 아무런 장애가 안되듯 성령하나님이 늘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집사님의 모든 기도들이 다 응답될 지어다 아멘!!